기업들의 AI 딜레마: ‘도구 과잉(Tool Sprawl)’과 데이터 사일로

AI 도입의 역설

2024년과 2025년을 관통하는 기업 IT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 통합이다. 모든 기업이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앞다퉈 AI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더 똑똑한 AI를 도입할수록 기업의 데이터 환경은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AI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수년간 기업들이 겪어온 디지털 전환(DX)의 부작용인 도구 과잉(Tool Sprawl) 현상이 AI라는 촉매제를 만나 데이터 사일로(Data Silo) 문제를 폭발적으로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진정한 AI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새로운 모델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도구와 단절된 데이터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도구 과잉(Tool Sprawl)의 현주소와 비효율성

도구 과잉이란 기업 내에서 업무 수행을 위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져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업무 복잡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클라우드 기반의 SaaS(Software as a Service) 도입이 보편화되면서 각 부서나 팀 단위로 개별적인 소프트웨어를 구독하는 경향이 이 현상을 가속화했다.

베터클라우드(BetterCloud)가 발표한 기업 내 SaaS 사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기업들이 사용하는 평균 SaaS 애플리케이션의 수는 약 130개에 달한다. 대기업의 경우 이 숫자는 수백 개를 쉽게 넘어선다. 문제는 이러한 도구의 급증이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직장인은 하루에 약 1,200번의 앱 전환(Context Switching)을 수행하며, 이로 인해 근무 시간의 약 9%를 단순히 화면을 전환하고 다시 집중하는 데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도구의 난립은 AI 도입 시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AI가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기업 전체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데, 정보가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애플리케이션에 흩어져 있다면 AI는 파편화된 정보만을 학습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AI의 답변 품질을 떨어뜨리고,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데이터 사일로, AI의 눈을 가리다

도구 과잉의 필연적인 결과는 데이터 사일로다. 데이터 사일로란 데이터가 특정 부서나 시스템에 고립되어 조직 전체가 공유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마케팅팀은 마케팅 툴에, 영업팀은 CRM에, 개발팀은 이슈 트래킹 시스템에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들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기업은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물을 긷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뮬소프트(MuleSoft)의 2024 연결 벤치마크 보고서(Connectivity Benchmark Report)에 따르면,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976개의 개별 애플리케이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중 서로 통합된 비율은 고작 28%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즉, 기업 데이터의 70% 이상이 특정 도구 안에 갇혀 있어 AI가 접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AI, 특히 LLM(거대언어모델)은 데이터의 연결성을 먹고 자란다. 예를 들어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려는 AI 봇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AI가 완벽한 답변을 내놓기 위해서는 영업팀의 계약 정보, 기술팀의 버그 리포트, 재무팀의 환불 규정 데이터를 동시에 참조해야 한다. 하지만 데이터 사일로가 존재한다면 AI는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결국 잘못된 의사결정 지원으로 이어진다. IDC는 이러한 데이터 검색의 비효율성과 재작업으로 인해 지식 노동자가 연간 근무 시간의 20% 이상을 낭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합(Integration)과 거버넌스,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은 베스트 오브 브리드(Best-of-Breed, 각 분야 최고의 개별 툴 사용) 전략에서 베스트 오브 스위트(Best-of-Suite, 통합 플랫폼 사용) 혹은 강력한 통합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단순히 도구의 수를 줄이는 것을 넘어, 도구 간의 API 연동을 강화하고 데이터 레이크(Data Lake)나 데이터 웨어하우스(Data Warehouse)를 통해 데이터의 중앙화를 꾀하는 것이다.

최근 슬랙(Slack)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팀즈(Teams)와 같은 협업 툴이 단순한 메신저를 넘어 업무의 허브(Hub) 역할을 자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흩어진 앱들을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통합하여 데이터의 흐름을 단일화하려는 시도다. 또한, CIO들은 섀도우 IT(Shadow IT, 회사 승인 없이 사용하는 IT 기술)를 양지로 끌어올려 데이터 거버넌스를 재정립해야 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얼마나 좋은 AI 모델을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깨끗하고 연결된 데이터를 AI에게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기업은 새로운 AI 툴을 도입하기 전에 기존의 기술 부채인 도구 과잉을 해소하고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재정비하는 작업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뺄셈의 미학이 필요한 시점

AI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축적해 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고도의 연산 도구일 뿐이다. ‘도구 과잉’과 ‘데이터 사일로’라는 모래성 위에 지어진 AI 시스템은 결코 견고할 수 없다. 기업들은 이제 덧셈이 아닌 뺄셈의 미학을 실천해야 한다. 불필요한 도구를 정리하고, 단절된 데이터를 잇는 것이야말로 AI 혁신의 첫걸음이다. 복잡성을 제거하고 데이터의 투명성을 확보한 기업만이 AI가 가져올 진정한 생산성 혁명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